왜 차별금지법인가
🔖 물론 모든 사람이 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같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약자 집단에 속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심하게, 자주 차별받는다. 교차성 강조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성애자에 대한 역차별도 똑같이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궤변이 아니다. 차별의 경험에 정도의 차이가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차별의 차이가 아닌 공통점에 주목함으로써 공감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차별은 마치 대기 오염과 같다. 오염이 심해지면 가장 먼저 쓰러지는 건 기저 질환이 있는 살마들이겠지만, 계속 방치하면 결국 모두가 호흡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당장 내가 받는 차별이 적다고 해서 아예 무관심하거나 계속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 안에서 차별은 한없이 퍼져 나가고 후에 그 피해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온다.
🔖 제도적 차별이 악순환의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은 차별적인 사회 제도가 개인적 차별을 지속해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고리를 끊을 방법은 반대로 “차별은 잘못되었다”라는 선언적인 효과를 지닌 제도를 만드는 것뿐이다. 개인적 차별이 이에 부합하는 제도로 인해 더 강해지듯, 반대로 그 차별은 잘못되었다고 명시하는 제도만이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꾼다. 이런 측면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특히 의미가 크다. 대상과 상관없이 모든 차별이 잘못되었다고 명시하는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의 제도화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 실제로 차별금지법이 멈춰 선 것은 조직화된 일부 개신교 단체가 정치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이용해 비토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는 이런 현상을 규제 포획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어느 정책이든 그 정책에 강한 관심을 가진 소수와 약한 관심, 또는 무관심에 머무는 다수가 있다. 관심이 강한 소수 집단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결정권자와의 관계를 만들고, 로비 활동을 한다. 이로 인해 소수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대표되고, 그 결과 다수에게 불리하고 소수에게만 유리한 정책이 만들어진다.